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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 Insight

'인텔과의 결별 선언'에 숨겨진 애플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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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애플의 '세계 개발자 회의(WWDC)'는 새로운 제품 발표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이벤트였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내용이 새롭게 바뀐 iOS에 집중되었을 뿐 관심을 모았던 신종 기기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애플의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관심을 끈 것은 애플이 맥(Mac) PC에 자사가 설계한 CPU를 탑재한다는 발표였다. 15년을 이어 온 인텔과의 관계를 끝낸다는 선언이었다. 빠르면 내후년부터 가칭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이라 불리는 새로운 CPU가 인텔 프로세서를 대체할 예정이다. 애플은 이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맥 OS 빅서(Big Sur)도 선보였다.

애플이 이미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에 자체 설계한 칩을 탑재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 역시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애플이 채택한 ARM 아키텍처가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지만 연산 성능은 인텔의 x86 CPU에 뒤지기 때문에, 맥 PC에 탑재되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많았다. 이런 까닭에 이번 애플의 발표가 오히려 예상보다 빨랐다는 시각도 있다.


"왜 애플은 인텔과의 결별을 선택했을까"

 

글로벌 IT 기업으로 성장한 애플의 스토리에서 인텔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애플은 인텔과 결별을 선택했을까? 일각에서는 인텔 스카이레이크 CPU의 더딘 기술 발전에 실망해서 결별했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성능이 문제라면 AMD도 대안으로 고려할 여지도 있기에, 더욱 큰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스티브 잡스와 인텔의 전 CEO 폴 오텔리니 (출처: AP News)

이번 WWDC에서 소개했듯이, 인텔과의 결별을 결심한 표면적 이유는 아이폰과 맥 PC 간 유기적 연결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아이폰에 탑재한 앱들을 별도 변환 없이 맥 PC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아이폰 구입이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의 매출로 이어지는 반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맥 PC는 이들 기기와는 이질적 제품으로 남아 있다.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꾼 반면, 맥은 아직도 윈텔 동맹(인텔 프로세서+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OS)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텔과의 결별은 아이폰을 중심으로 구축된 생태계를 확장하는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인텔과의 결별 선언이 애플에게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다. 최근 AMD의 기세가 위협적이지만, 여전히 인텔은 CPU 시장의 압도적 강자다. 모바일과 달리 PC에서는 인텔이 구축한 x86 CPU 생태계가 확고하다. 게다가 맥 OS는 윈도우 OS와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ARM 프로세서 기반 윈도우 OS를 출시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애플이 맥 OS를 포기할 까닭도 없지만 만일 마이크로소프트가 ARM 프로세서 기반 윈도우 OS를 강력히 지원할 계획이 없다면, 윈도우 OS를 레버리지로 맥 PC의 매출을 견인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사라지는 셈이다.

2019년 12월 기준 OS 점유율 (출처: Net Market Share, Statista)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피스(Office) 등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맥 OS 전용으로 제공하고는 있지만, 윈텔에 익숙한 사용자가 맥 PC로 이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애플은 x86 계열의 소프트웨어도 x86-ARM 번역기인 로제타 2(Rosetta 2)를 통해 새로운 맥 PC에서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리스크 최소화를 선택한 애플"

 

만일 애플의 전략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더라도, 실적 측면에서 애플이 입는 타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애플이 사명에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버린 것처럼, 이제 애플은 PC보다는 모바일, 그리고 컨텐츠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 탄생의 주역인 맥 PC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서서히 줄고 있다. 최근 PC 성장이 다소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맥 PC의 판매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승승장구하는 아이폰과 달리 맥 PC의 위상은 더욱 초라해지고 있다.(링크)

애플의 기기 별 매출 비중 (참조: MacRumors)
글로벌 PC 메이커별 글로벌 시장 점유율 (참조: 가트너)

따라서 애플은 독자 칩 전략으로 맥 PC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만일 여의치 않더라도 맥 PC를 통해 아이폰 사용자를 자사 생태계에 단단히 묶을 수 있다면 크게 손해 보지 않는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애플의 전략은 특히 현재 PC 시장 상황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글로벌 PC 시장은 이미 성장세가 꺾인지 오래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반짝 부활 조짐을 보였지만 장기적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추세를 고려할 때 애플 역시 실현 가능성 낮은 맥 PC의 매출 확대보다는 애플 팬의 충성도를 PC 로 확장해 수익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글로벌 PC 시장 규모(판매량) (출처: Statista)


"차별화 전략을 통한 생존 경쟁의 시작"

 

향후 PC 시장 판도는 어떻게 전개될까? 구글의 크롬 OS를 비롯한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윈도우 OS의 아성은 공고한 가운데, 중저가 메이커를 중심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PC 시장의 수익 창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PC 메이커는 차별화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고사양 그래픽 게임 등 특화 영역을 강조하거나, 무게를 줄이든, 혹은 태블릿과 노트북의 결합 등 하드웨어 측면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폰의 막강한 UX를 맥 PC에 접목하려는 애플의 선택 역시 차별화 경쟁이라는 PC 시장 트렌드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의 도전이 얼마나 적중할지가 향후 IT 업계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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